퇴사한다고 말했을 때 상처받는 이유, 내 선택이 부정당한다고 느껴질 때

퇴사를 결심하는 일은 대부분 충동이 아니다.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쌓인 피로와 고민 끝에 어렵게 내린 선택이다. 그런데 막상 “이번에 퇴사하기로 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예상보다 더 큰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보다, 일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더 아프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흔한 반응은 이런 말들이다.

“요즘 같은 때 왜 나가?”

“거기서도 못 버티면 다른 데 가도 힘들지 않아?”

“조금만 더 참아보지 그랬어.”

겉으로는 걱정이나 조언처럼 들리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네 선택은 잘못됐다’는 평가로 느껴진다. 이 말들이 상처가 되는 이유는, 퇴사 결정 이전에 이미 스스로 수백 번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돈은 괜찮을지, 다음 일은 어떻게 할지, 정말 내가 문제는 아닌지 끝없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인데, 그 과정을 통째로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상처가 커지는 경우는 상대가 가까운 사람일수록이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에게서 “그래도 회사는 다니면서 준비했어야지”라는 말을 들으면, 조언이라기보다 인생을 잘못 선택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당수는 상대방 자신의 불안이다. 불안정해 보이는 선택이 곧 자기 삶을 흔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말로 제동을 거는 것이다.

회사 상사나 동료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요즘 퇴사하면 후회한다”는 말은 진짜로 당신을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인력 이탈에 대한 부담이나 ‘남아 있는 사람이 옳다’는 자기 합리화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퇴사를 말한 사람은 그 말을 고스란히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게 된다.

이런 반응에 상처받는 또 다른 이유는, 퇴사가 단순한 직장 이동이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어디 회사 다니는 사람’으로 불려왔던 자리를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 불안한 상태에서 던져진 말 한마디는, 단순한 의견을 넘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첫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퇴사 이유를 자세히 말할수록 더 많은 질문과 평가가 따라온다. “충분히 고민했고, 나에게 필요한 선택이야”라는 짧은 문장만으로도 대화는 충분히 정리된다. 설득은 선택 사항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번째는 반응을 걸러 듣는 연습이다. 상대의 말이 나를 설명하는지, 아니면 그 사람의 불안을 드러내는지 구분해야 한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반응은 당신의 능력이나 판단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모든 말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면, 불필요한 자기비난만 커진다.

세 번째는 공감해 줄 사람을 선별하는 것이다. 퇴사를 아직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까지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선택의 무게를 이해해 주는 한두 명과의 대화가 훨씬 큰 힘이 된다. “그만큼 힘들었겠구나”라는 말 한마디가, 열 개의 조언보다 위로가 된다.

퇴사한다고 말했을 때 상처받는 건, 당신이 유별나게 약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삶을 가볍게 결정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남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선택일 수는 있지만, 잘못된 선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그 선택의 결과를 살아가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그러니 최소한, 스스로의 판단만큼은 존중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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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퇴사 후 찾아오는 진짜 감정

퇴사 다음 날 아침, 생각보다 조용했다

퇴사하면 분명 후련할 줄 알았다. 눈 뜨자마자 울리던 출근 알람이 사라지고, 억지로 입던 셔츠 대신 잠옷 차림으로 창문을 열 수 있는 아침.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이 가볍기는커녕, 너무 조용했다.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회사 단톡방은 이미 나 없이 굴러가고 있었고, 내 캘린더는 하얗게 비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자유일 텐데, 그 자유가 나에게는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퇴사했는데, 왜 기분이 더 안 좋죠?”

퇴사 후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문제는, 이 감정을 미리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30대 후반의 B씨는 말했다.

“회사 다닐 땐 하루만 쉬어도 천국 같았는데, 막상 그만두고 나니까 하루가 너무 길어요.” 출근할 필요도 없고, 눈치 볼 상사도 없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가면괜히 내가 쓸모없어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 공허함은 ‘의욕 상실’이 아니라 정체성이 잠시 사라진 상태에 가깝다.

우리는 생각보다 ‘회사’로 나를 설명해왔다

“어디 다니세요?”

이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퇴사 후 같은 질문을 받으면 말이 잠깐 막힌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요.”

괜히 덧붙이게 된다. ‘잠시’라는 단서를. 회사에 다닐 때 우리는 직함, 팀, 역할로 자신을 설명했다. 퇴사는 그 설명서를 한 번에 찢어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퇴사 후 공허함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설명할 언어가 사라졌기 때문에 생긴다.

후련함 다음에 오는 공허함은 실패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를 이렇게 해석한다.

“괜히 나왔나?”

“내 선택이 틀렸나?”

하지만 퇴사 후 공허함은 잘못된 선택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너무 열심히 한 역할에 몰입해왔다는 증거다. 일을 대충 해온 사람은 이렇게 허전해하지 않는다.

공허하다는 건, 그만큼 삶의 중심에 일이 있었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채워야 할 때가 아니라, 비워지는 시간이다

퇴사 후 우리는 조급해진다. 당장 다음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고, 쉬고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SNS 속 남들은 다 잘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위험한 건 공허함을 빨리 없애려는 마음이다.

이 시간은 새로운 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예전 질문을 다시 보는 시간이다.

  • 왜 그렇게까지 버텼는지
  • 무엇이 나를 지치게 했는지
  •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건 무엇인지

공허함은 공백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위한 여백일 수 있다.

후련하지 않아도 괜찮다

퇴사했는데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당신이 이상한 건 아니다. 후련함보다 먼저 오는 공허함은 너무 정상적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언젠가 방향으로 바뀐다. 지금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아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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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싶은데, ‘지금 나가면 망할까’라는 공포가 발목을 잡을 때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거의 비슷한 문장이 맴돈다.

“지금 나가면 인생 망하는 거 아닐까?”

회사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데, 막상 퇴사를 상상하면 더 큰 불안이 밀려온다. 통장 잔고, 공백 기간, 다음 직장, 그리고 ‘지금 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아닐지’에 대한 공포. 이 감정은 의외로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온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느낀다.

사례 1. 번아웃인데도 사표를 못 내는 7년 차 직장인

IT 회사에서 7년째 일하는 A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출근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일은 예전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사소한 메일 하나에도 심장이 빨리 뛴다. 스스로도 번아웃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퇴사를 결심하지 못한다.
“여기서 나가면 내가 다른 데서 잘할 수 있을까?”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게 맞나?”
“지금 회사라도 있으니까 버티는 거지, 나가면 더 불안해질 것 같아.”
A씨를 붙잡고 있는 건 회사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붙들고 있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공포’다.

이 공포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 나가면 망할까’라는 감정은 실제 위험보다 과장된 상상에서 커지는 경우가 많다.

  • 퇴사 = 소득 0원 = 생존 위기라는 단순화
  • 공백 = 실패라는 사회적 낙인
  • 지금 회사가 내 커리어의 유일한 안전망이라는 착각

특히 오래 한 회사일수록, 조직이 곧 나 자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회사를 떠나는 선택은 단순한 직업 변경이 아니라 정체성을 잃는 일처럼 느껴진다.

사례 2. 퇴사 후 바로 망할 줄 알았던 사람의 실제 모습

마케팅 직무 10년 차 B씨는 퇴사 전까지 “지금 나가면 다시는 이 연봉 못 받을 것 같다”고 말하던 사람이다. 주변에서도 “요즘 시장 안 좋다”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고민 끝에 퇴사를 했다.
퇴사 직후 B씨는 불안했다. 출근을 안 하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채용 공고를 새로고침했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잠을 제대로 자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커리어 방향을 정리했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였을까’를 처음으로 돌아봤다
B씨는 말한다.
“퇴사하자마자 망하지는 않더라. 오히려 망하고 있던 상태를 멈춘 느낌이었어.”

퇴사가 무서운 게 아니라, 불확실성이 무서운 것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사가 아니라 ‘이후가 안 보이는 상태’를 두려워한다. 문제는 불확실성을 없애고 퇴사하려고 하면, 그 순간은 거의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완벽한 다음 직장, 100% 확신, 모든 리스크가 제거된 상태는 없다. 그래서 퇴사를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점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다들 이렇게 버티는데 나만 예민한 건 아닐까?”

“조금만 더 하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이 상태로 1년을 더 버틸 수 있는가?’

망할까 봐 두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관점

퇴사는 도박이 아니라 전환이다. 지금 회사를 나간다고 해서 인생이 바로 무너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반대로, 이미 무너지고 있는 상태를 방치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퇴사를 고민한다는 건 이미 마음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여러 번 무시해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망할까 봐 무서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공포 하나로 나 자신을 계속 소모시키고 있다면, 그 또한 다른 형태의 위험이다. 퇴사는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지만,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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